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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중앙일보 칼럼』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운 세상
작성자
구담사
날짜
2010-08-19 17:48:59

『지율스님 칼럼』공존의 미학

똥막대기에서 부처님의 형상을 읽어내듯, 모든 인연은 스승이다. 먼지처럼 가벼운 듯하지만, 너무도 무거운 생(生).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늘 삶이 만들어내는 운명의 차크라를 아름답게 승화시킬 의무를 걸머진 채 한 세계를 건너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완전한 생. 앞으로도 질주할 수 없고 뒤로도 물러설 수 없는 순간들을 직면하게 된다. 이 모든 문제는 욕망의 함수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우리는 인연을 맺고 풀어내는 그 사이에 존재한다. 인연에는 상생의 선연도 있고 상극의 악연도 있다. 그런데 그 인연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마음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산사를 뒤로하고 8월의 진록이 펼쳐진 폭염 속으로 출타를 한다. 버스를 타기위해, 신작로를 향한 나의 발걸음이 어느새 동네 어귀에 달았을 때쯤이다. 필자가 처음 포천이라는 골짜기 안, 작은 마을에 둥지를 틀 때까지만 해도 계곡에서 물장구치면서 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없는지? 지금 내 시야에 머무는 풍경들은 콩밭이며 푸성귀 사이를 누비고 있는 허리 굽고, 오뉴월에 서리가 내렸나 싶을 정도로 백발이 무성한 노인들뿐이다. 원두막 하나 지어놓은 길목에는 고령화로 인해 연세 지긋한 마을 어른신들 뿐이다. “이제는 그 모습조차도 한분 두 분 밖에 계시지 않구나” 라는 생각에 절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우리사회가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음을 세삼 실감하는 찰나다.

필자만 해도 형제가 7형제이다. 각자 자기 업에 의해 밥그릇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당시 필자의 부모는 낙태라는 것도 없이 딸이 다섯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낳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며 아들 둘을 더 낳았다. 요즘같이 “자식 하나만”이라는 계산적인 방식이 아닌 모두가 힘들어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집, 이웃집 할 것 없이 자식 대여섯은 흔한 광경으로 사람냄새가 물신 풍기는 시절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인구 과잉성장의 압력을 두려워했던 한국사회가 불과 30년 사이 완연한 고령화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저 출산 문제와 함께 낙태라는 가치혼란이 만연해진 난립이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매년 낙태되는 태아가 모두 정상적으로 성장해 출산되었다면 지금쯤 가정마다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이 모든 게 현실화되려면 우리의 인식과 사회환경 및 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낙태율은 우리 사회에서 출산이 축복받지 못하는 현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나라의 인구는 국토에 비해 너무 많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인구밀도가 늘 세계 5위권 안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70~80년대, 늘 인구증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우리나라는 그러한 이유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딱 하나만 낳아 정성껏 키우자” 등의 표어들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었던 흔한 말들이었다.

이렇게 온 국민이 배고프던 70년대를 거쳐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잘사는 지름길로 선전됐고, 출산과 육아를 경제적 가치로 따지기 시작하면서 그때까지 유지돼 오던 낙태금지의 법규범이 사문화로 풀리면서 잘살자는 구호 앞에서 모두가 저지르는 일상사가 되고 말았다. 낙태는 산모의 건강은 물론 실정법상 범죄행위이가 아닌가. 싶은 씁쓸한 마음과 함께 국가와 의사, 그리고 국민 모두 낙태 범죄의 공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 결과 우리는 잘살게 됐지만 그럼에도 가구당 평균 1.19명의 자녀를 기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출산과 육아 및 교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근본적으로는 잘산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이 순간, 힘겨운 삶의 고통 속에서도 남녀노소가 공존하는 사람냄새가 나던 그때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어느 동네 건 간에 아이들 웃음소리로 넘쳐났고 아이들은 나무칼을 차고 골목을 누벼가며 전쟁놀이를 하다가 개천가에서 이웃동네 아이들과 텀벙텀벙 물놀이를 하다가도 돌팔매질로 대결하기가 일쑤였다. 대여섯 살에서 많아야 열 살 남짓 나이의 꼬맹이들이니 팔매질이라고 해 봐야 개천을 겨우 넘길까 말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름철 장마가 끝난 후 그러니까 이맘때쯤 아이들은 그 개천가에서 멱을 감고 송사리, 미꾸라지 같은 것들을 잡으러 무리지어 개천을 누비고 다니던 모습들이 나의 기억 저편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세기가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 모래알처럼 박혀 잊혀 지지 않는 기억 속에 머무르는 향수들이다.

이 무렵에는 푸성귀에 소금을 곁들인 소금국이라는 것과 보리밥은 만찬이고 겉보리 죽을 먹을 지언 정 굶지만 안으면 다행이던 시절 이었다. 이렇게 먹을 것, 입을 것 없었어도 그래도 서로서로 정을 쌓으며 신뢰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윤리의식과 정이 넘쳐났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쉬움, 안타까움, 허무함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답을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건 바로 작금의 시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남녀노소가 공존하고 대가족이라는 혈연관계의 형성이 아닌가. 요즘 같이 저출산문제로 이어 진다면, 형제라는 단어와 이모, 고모, 삼촌 등의 친척이라는 개념을 비롯해 가족 간의 사랑은 물론 이웃 간의 정까지도 사라지고 마는 상막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보태본다.

출처: 구담사 지율스님

<본 자료는 정보제공을 위한 보도 자료입니다.>

조인스닷컴(Joins.com)
last modified : 2010-09-02 18: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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