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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절규에서 본 태아!
낙태시키는 가운데, 아이는 칼에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화면에서 본 순간, ‘똑같은 인간의 업을 받아 태어났지만 업이 많은 인연은 부모의 인연이 되지 못해 칼로 사지를 오려 내어 죽는구나’ 하는 마음에 기도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중절수술하고 꿈을 꾸는 악몽에서 시달림 같은 모습이 아이가 팔, 다리가 비틀린 모습으로 나타나, “제가 무슨 죄업 때문에 자신이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이 악몽에서 벗어나고 죄업이 소멸하여 원결을 풀어 주리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하기를,
「비구들이여, 그 중생은 전생에 이곳 왕사성에서 스스로 자신의 태(胎)를 떨어뜨렸다. 그 죄로 지옥에 떨어져, 이미 백천세(百千歲)나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고, 이제는 그 육체를 얻었지만 남은 죄로 계속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비구들이여, 마하목련존자가 본 것은 진실이며, 틀림이 없다. 그 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설하셨다.

어떤 아귀가 목련존자에게 와서 물었다.
「나는 몸을 받아 태어났지만 팔, 다리가 없어, 마치 한 덩어리의 고기 덩어리 같습니다. 넓은 초원에 있으면, 호랑이, 늑대, 표범, 매, 독수리등, 모든 축생들과 큰 나무의 새가 와서 서로 싸우며 쪼아대서 그 고통을 도저히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요?」

그러자 목련존자는
「너는 전생에 인간으로 태어나 너 자신과 타인이 임신했을 때, 악한 방법으로 약을 만들어 주어, 태아를 없애버리려 했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이제, 너는 과거의 죄업에 대한 과보중에 ‘꽃이 피는 과보’를 받고 있으며, ‘열매를 맺는’ 지옥에서 받을 것이다.

불전에 나타난 타태의 과보를 설명하고 불자들의 경외심을 각성해, 불타의 시대인 옛날부터 중절의 과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교화하면서 태아생명존중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水子>에서 참조)


 



소승이 그동안 많은 태아령을 기도하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일이다. 흔히 유산은 스스로 낙태시키지 않고, 태속에서 부모와 인연이 없어 사라진 아이라 생각하는 분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입태장회』경에 이르기를 「만일 그 태에 있는 아이가 전생 몸으로 수많은 나쁜 업을 지었거나 남에게 낙태를 하게 하였다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장차 나오려고 할 때에 손과 다리가 멋대로 놓이고 움직여지지 않아 곧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게 된다.」
 

태아가 부모의 인연으로 만나다가 과거의 전생 악업으로 인하여 맺지 못하고 유산이 되는 것이다. 이 악연은 결혼 전 사랑을 하여 맺어지다가 환경에 의해 낙태한 경우, 결혼하고 난 뒤 아이를 갖지 못하거나 유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성문화가 발달되면서 낙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쉽게 생각하여 지워버린 태아로 인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당시는 잘 모르지만 결혼을 하고 난뒤, 유산이 자주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행복해야 할 결혼생활이 불행해진다고 하는대, 그런 불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깨끗한 성문화가 발달되는 것이 환경으로 좋은 생활이요, 건전한 가정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백중기도라 하여 조상 천도재 법회만을 베풀어 왔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조상영가 천도재와 낮선 영가의 모습을 보이게 하였다. 이것은 지금에 수자령(태아영가)이다.

여기에서 느낀것은 일본에서는 아기의 영혼을 참회하는 의미에서 미찌꼬(수자령(水子靈))라 명칭하여 부르는데, 우리는 용어 하나 가지고 각자의 생각의 생각을 넣어 부르고 위패를 쓰고 있는 것이다. 부르는 이름을 정리해 보면, “수자영가”, “태아영가”, “태중수자영가”, “낙태영가”, “태아령”, “태아인연영가”, “미생아 영가”, “태중미생아”, “태중영가”, “수정영가”, 태중고혼“, ”선태아애혼“, ”태자영가“등으로 다양한 이름을 타나내고 있다.

 

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모친의 태안에서 명을 다하고, 저 세상의 어둠으로 사라져간 태아영가이다. 우리 종교계에서는 엄마의 태내에서 사라져간 아이들 이름이 각자로 구분되어 쓰여지고 있다. 소승은 이 용어에 대해 통일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가 흔히 엄마의 태속에 있는 아이를 보통 하는 말로,‘태아가 잘 놀고 있네’, ‘태아가 건강해요’등 하는 말로 쓰이고, ‘그놈 엄마 뱃속에서 수자가 잘노네’, ‘미생아가 잘 크네’, ‘수정태아 건강하네’하는 용어들은 잘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는 운동에 임신 중절이 갑자기 늘기 시작하고 오늘날 공식 통계만 하여도 150만건에 세계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해마다 심각해지는 임신중절에 종교계에서 앞장서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침묵해 오던 낙태아 반대운동에 나서고, 임신중절은 “보이지 않는 살생”으로 보고있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어린 생명을 참회로서 시작돼야 태아의 영혼 원결을 풀어 천도재를 재내주는 의식이 시작돼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태아의 영혼을 위해 『지장보살』, 『반야심경』, 『츰부다라니』등 사경기도와 함께 『금강경』, 『지장보살진언』, 『해원결진언』, 『해탈주』, 광명진언』등 염불하여 중절된 태아의 영혼을 천도하여 위로하여 주고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로 49재와 천일(千日)기도하여, 이 생에서 지은 업장을 소멸하고 다음 생에 좋은 인과인연을 맺도록 기도해주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친구공양>에서 참조)